"아빠, 나는 커서도 엄마 아빠랑 꼭 같이 살 거야." 불을 끄려는데 네 살 아들이 이불 속에서 불쑥 말했다. 장난삼아 "혼자 살면 과자 마음껏 먹어도 되는데?"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그래도 같이 살겠단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스쳤다.

결혼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 약속을 서른 넘어서까지 지키면 어쩌지. 아이는 모르겠지만, 그 약속을 정말로 지켜낸 어른이 요즘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킨 30대 효자들 청에 따르면 배우자가 없는 30대 초반의 46.3%, 30대 후반의 41.8%가 부모와 함께 산다. (2022년 기준).
서른다섯을 넘겨도 열 명 중 네 명은 어릴 적 방에서 아침을 맞는다는 얘기다. 집값은 비싸고 좋은 일자리는 귀하다. 결혼이 늦어진 영향도 크다.
부모와 산다는 것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월세를 아껴 종잣돈을 모으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니까. 마음에 걸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다.

이 대목에서 확인할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30대가 30만 9천 명이었다. 원하는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마음은 이해한다.
다만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원하는 일만 고르다 문이 좁아진 경우도 적지 않고, 그 기다림의 비용은 대개 부모님 통장에서 빠져나간다.
미성년으로 사는 건 얼마나 편한가 칸트는 계몽을 스스로 만든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미성년으로 머무는 건 참 편하다고 덧붙였다.
나 대신 판단해 주는 책이 있고, 나 대신 식단을 정해 주는 의사가 있으면 굳이 애쓸 필요가 없으니까.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240년 전 글인데, 요즘이라면 의사 자리에 밥을 차려 주는 엄마가 들어가지 않을까. 뇌과학의 설명도 비슷하다. 뇌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쓴다.
익숙한 방과 정해진 식사 시간 앞에서는 떠날 이유보다 머물 이유가 늘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그 편안함이 경제적으로 남는 장사도 아니었다.
같은 에서 부모와 사는 청년의 중위소득은 2,932만 원으로 따로 사는 청년(3,553만 원)보다 낮았고, 집을 가진 비율은 6.5%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나이나 취업 여부 차이도 섞여 있겠지만, 월세를 아낀 만큼 자산이 쌓인다는 계산은 생각처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메이크업의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 사이 부모의 시간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노인 소득 빈곤율은 39.7%로 OECD 평균의 2.7배,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일본에서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8050 문제가 불거진 것도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부모님은 우리의 보험이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지켜 드려야 할 쪽이다.
부모님이 정말 바라는 약속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다 보면 출발선은 자꾸 뒤로 밀린다. 독립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작은 원룸이어도, 저녁이 라면이어도 괜찮다.
내가 번 돈으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을 조금씩 굴려 보는 경험이면 충분하다. 주변을 봐도 그렇다.
연봉 높은 대기업 친구보다, 일찍 나와 적은 월급을 쪼개 굴려 본 친구가 지금 더 단단한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무엇일까?
복리는 돈에만 붙지 않는다. 일찍 시작한 시행착오에도 붙는다. 오늘 밤에도 아들은 같이 살 거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 약속은 웃으며 받아 줄 생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는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지길 원하지 않는다. 언젠가 아이가 그 약속을 깨고 자기 문을 열고 나가는 날,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부 모가 바라는 효도는 곁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잘 떠나 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다시, 희망 가져봐도 되나" 삼성전자 주가 반등할 예상 밖의 이유 찬바람이 돌기 시작한 지난주 점심, 동료 둘과 회사 근처 굴국밥집 앞에 섰다.
문을 밀려는데 한 사람이 걸...
- 이 약속을 서른 넘어서까지 지키면 어쩌지.
- 지난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30대가 30만 9천 명이었다.
- 240년 전 글인데, 요즘이라면 의사 자리에 밥을 차려 주는 엄마가 들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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