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 본 식당에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이렇게 묻게 된다. "여기 뭐가 제일 인기 많나요?" 지난주 점심에도 그랬다. 그런데 직원이 권한 메뉴를 그대로 시켰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든 생각이 재미있다. '추천이 별로였네.' 내가 잘못 골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메뉴판을 덮고 주문한 건 분명히 나인데, 책임은 어느새 추천한 사람에게 넘어가
메뉴판을 덮고 주문한 건 분명히 나인데, 책임은 어느새 추천한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10월 확신 종목 리스트를 새로 내놨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 점심이 떠올랐다.
골드만삭스가 꼽은 최선호주 TOP5 아마존, 벌링턴스토어즈, 헌팅턴잉걸스, 존슨컨트롤즈, 옥시덴탈페트롤리엄이 새로 들어갔고, 코노코필립스와 타이슨푸즈 등 다섯 종목이 빠졌다.
목표주가가 꽤 화끈하다. 아마존 목표가 375달러는 지금보다 50% 넘게 높고, 헌팅턴잉걸스 439달러는 60%, 벌링턴 382달러는 40%쯤 위에 있다.
근거도 그럴듯하다. 아마존은 AWS로 몰리는 AI 컴퓨팅 수요, 전자상거래 수익성 개선, 광고 성장이라는 세 가지 해자를 갖고 있다.
헌팅턴잉걸스는 미 해군 함정 건조에 집중된 기업이라 조선업 기반을 키우려는 정부 기조의 수혜가 기대되고, 벌링턴은 매장 확대와 비용 효율로 마진을 넓혀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 종목에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최근 주가가 부진했다는 점이다.
아마존 주가 차트 아마존은 지난 1년 S&P500보다 못했고, 헌팅턴잉걸스는 연초 대비 20% 빠졌고, 벌링턴은 석 달 새 13% 내렸다.

골드만삭스는 이걸 매력적인 진입점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이걸 매력적인 진입점이라고 말했다. 많이 빠진 종목에 높은 목표가를 붙이면 상승 여력이라는 숫자는 자연히 커진다.
50%, 60%라는 제목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유다. 여기서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생각났다.
1961년 예일대에서 그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학습 실험이라며, 옆방 사람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올리게 했다.
충격은 가짜였지만 참가자는 몰랐다. 흰 가운을 입은 실험자가 "계속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40명 중 26명이 최고 단계인 450볼트까지 스위치를 눌렀다.
밀그램은 이를 대리자 상태로 설명했다.
권위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을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남의 뜻을 대신 수행하는 도구로 여기게 되고, 그 순간 책임감도 함께 권위 쪽으로 건너간다는 것이다.
월가 전문가가 추천한 주식, 믿고 매수해도 될까? 투자에서 흰 가운은 월가의 간판이다.
출처 : 로이터 '골드만삭스가 찍었다'는 한 줄이 붙으면 우리는 종목을 따져 보는 사람에서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매수 버튼을 누르는 손은 내 손인데, 마음속 결재란에는 남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제는 그 뒤다
문제는 그 뒤다. 헌팅턴잉걸스는 지난 3월 마진 실망과 부진한 실적을 이유로 이 리스트에서 빠졌다가 일곱 달 만에 돌아왔다.
리스트는 매달 바뀌고, 빠지는 종목은 기사 한 줄로 조용히 사라진다. 권위는 의견을 고치면 그만이지만, 손실은 스위치를 누른 사람의 계좌에 남는다.
책임을 넘겼다고 느낄 뿐, 실제로는 한 푼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리포트가 쓸모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미국 기술주를 오래 들고 가는 입장이라 아마존 부분은 꼼꼼히 읽었다. 다만 읽는 순서를 바꾼다.
목표가보다 근거를 먼저 보고, 그 근거가 틀렸다는 걸 내가 무엇으로 알아챌 수 있을지 적어 본다.

출처 : AP AWS 성장률이 꺾이는지, 해군 예산이 실제 수주로 이어지는지
출처 : AP AWS 성장률이 꺾이는지, 해군 예산이 실제 수주로 이어지는지, 벌링턴의 마진이 정말 넓어지는지.
벌링턴만 해도 따뜻한 날씨와 유가 상승이 매출을 누를 수 있다는 걱정이 주가를 끌어내렸는데, 그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고 회사가 날씨 민감도를 줄이려 애쓰는 중일 뿐이다.
목표가는 12개월 뒤의 약속이 아니라 여러 가정을 곱한 추정치라서, 가정 하나가 어긋나면 숫자도 같이 움직인다.
그리고 주가가 30% 빠져도 들고 있을 이유를 내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답이 나오지 않으면 아직 내 종목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며 요즘은 식당에서 추천을 받아도 한마디를 덧붙인다
마치며 요즘은 식당에서 추천을 받아도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건 어떤 맛이에요?" 대답을 듣고 내 입맛에 맞을지 따져 본 뒤에 시키면, 맛이 없어도 남 탓이 나오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고른 음식은 실패해도 덜 억울하다.
추천은 참고하되 주문은 내가 하는 것.
월가의 리스트를 읽는 일도 아마 그 정도 거리가 적당할 것이다. "안 살 이유가 있나" 미국 중간선거 지든 말든 수혜받는 주식은 어디?
오늘 친구들 단톡방이 오랜만에 시끄러웠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얘기였다. 한 친구는 민주당이 의회를 가...
- 메뉴판을 덮고 주문한 건 분명히 나인데, 책임은 어느새 추천한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다.
- 골드만삭스는 이걸 매력적인 진입점이라고 말했다.
- 문제는 그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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