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에게 33년 동안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그 얘기를 꺼낼 날이 올 줄 몰랐다. 지난달 딸이 첫아이를 낳았다. 산후조리원 2주에 4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나는 그 숫자를 듣고 잠깐 웃었다. 가방 속 봉투 생각이 나서였다. 조리원 방에는 침대와 유축기가 있었고 하루 세 번 따뜻한 밥이 들어왔다.

이 대목에서 확인할 내용은 무엇일까?
사위는 퇴근하면 와서 아기 목욕을 배웠다. 그래도 딸은 매일 울었다. 사흘째 밤이었다. 우리 딸이 젖을 물리다 말고 울면서 물었다.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냐고.
나는 대답 대신 또 웃었다. 딸은 서운한 얼굴이 됐다. 그런데 내가 대답 대신 웃은 건 딸이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33년 전 나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딸을 낳고 사흘 만에 시댁 작은방으로 돌아왔다. 겨울이었고 방에는 연탄불 하나였다. 천 기저귀를 빨아 마당 빨랫줄에 널었다.
7일 만에 나는 부엌으로 나가 시아버지 밥상을 차렸다. 그 시절 남편 월급이 60만원이었다. 병원비 20만원을 내고 나니 분유값이 빠듯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나는 그때 내 엄마에게 전화로 똑같은 걸 물었다. 엄마도 이렇게 힘들었냐고. 수화기 너머 엄마도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웃음이 섭섭해서 한참을 울었다.
사흘 뒤 친정에서 봉투 하나가 왔다. 엄마는 끝내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조리원 사흘째 그날 밤, 나는 내가 모은 봉투를 가방에서 꺼냈다.

결혼에 관해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딸이 결혼하던 해부터 한 달에 10만원씩, 2년 동안 꼬박 모은 240만원이었다. 딸이 봉투를 받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엄마도 힘들었냐고.
나는 이번엔 웃지 않고 33년 전 그 전화 얘기를 해 줬다. 나도 똑같이 물었고, 내 엄마도 웃기만 했다고.
딸 앞에서 똑같이 웃고 나서야 내 엄마의 웃음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았다.
헤어스타일은 어떻게 연출했을까?
힘들었지, 그런데 너는 나보다 낫구나. 그 말을 차마 못 해서 웃고 대신 봉투를 보낸 것이었다. 내 가방 속 봉투도 같은 말이었다.
33년 동안 딸에게 하지 않은 얘기가 바로 그 전화였다. 딸은 그 봉투를 조리원 침대 머리맡에 두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전해주며 울었다고 했다.
다음으로 살펴볼 내용은 무엇일까?
언젠가 손녀가 똑같이 물으면 그때는 딸도 나처럼 웃게 된다.
- 사위는 퇴근하면 와서 아기 목욕을 배웠다.
- 나는 그때 내 엄마에게 전화로 똑같은 걸 물었다.
- 딸이 결혼하던 해부터 한 달에 10만원씩, 2년 동안 꼬박 모은 240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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