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대폰을 업데이트했더니 자주 쓰던 버튼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걸 분명히 아는데도 며칠 동안 엄지손가락은 계속 예전 자리를 눌렀다. 머리는 알고 있는데 손이 먼저 간다. 익숙한 방식이라는 건 생각보다 끈질기다.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주말에 삼성전자 리포트 기사를 읽다가 그 엄지손가락이 떠올랐다
주말에 삼성전자 리포트 기사를 읽다가 그 엄지손가락이 떠올랐다.
삼성전자 목표주가 전망 IBK투자증권은 3일 삼성전자에 대해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46만 원을 유지하면서, 지금 주가가 현저한 저평가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주가 차트 좋은 얘기만 담긴 리포트는 아니다.
3분기 실적은 이전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봤다. 그래도 숫자 자체는 낯설 만큼 크다.
매출 195조 2,000억 원, 영업이익 101조 7,000억 원, 영업이익률 52.1%. 이 가운데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이 101조 8,000억 원이다.
스마트폰과 가전은 적자가 예상되니, 사실상 메모리가 회사 전체를 끌고 가는 구조다.
이익이 이렇게 나는데 왜 저평가라는 말이 나올까. 나는 그 이유를 1942년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루친스의 물항아리 실험에서 찾고 싶다.
루친스는 크기가 다른 항아리 세 개로 정해진 양의 물을 만드는 문제를 냈다. 처음 몇 문제는 모두 같은 복잡한 공식으로 풀렸다.

그 뒤에 훨씬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를 섞었는데, 앞 문제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 뒤에 훨씬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를 섞었는데, 앞 문제에 익숙해진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복잡한 공식을 썼다.
옛 공식으로는 아예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손을 놓아버린 사람도 많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갖춤새 효과(Einstellung effect)라고 부른다.
한 번 통했던 풀이법이 다음 문제를 보는 눈을 가린다는 뜻이다. 반도체 사이클에도 삼성전자 주가 오를 이유 메모리 주식에도 오래된 풀이법이 있다.
"실적이 가장 좋을 때가 꼭지다." 메모리는 호황에 증설하고, 증설이 공급 과잉을 부르고, 가격이 무너지는 일을 반복해왔다.
그래서 이익이 최고일 때 오히려 주가수익비율(PER)을 낮게 쳐주는 것이 이 업종의 관행이 됐다.
메모리 주식을 오래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공식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웠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분기 영업이익이 100조 원을 넘는다는 숫자를 보고 반가움보다 '이제 꼭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버튼 자리가 바뀐 줄 알면서도 예전 자리를 누르던 그 엄지손가락과 다를 게 없었다
버튼 자리가 바뀐 줄 알면서도 예전 자리를 누르던 그 엄지손가락과 다를 게 없었다. 리포트가 묻는 건 결국 문제가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급이다. 김운호 연구원은 메모리 공급 부족이 길어지면 수익성이 지금 수준에서 유지되면서 이익 규모가 안정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HBM4 비중 확대와 공급 제약을 이유로 2027년 HBM 평균판매가격이 전년보다 121%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다른 하나는 주주환원이다.
배당을 통한 환원 규모가 사상 최대가 될 것이고, 메모리 업체가 100조 원 넘게 주주환원을 집행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전례가 없다는 건 옛 공식에 대입할 숫자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출처 : 중앙일보 이익이 들쭉날쭉한 회사와 매년 꾸준히 큰돈을 돌려주는 회사를 시장은 서로 다른 문제로 취급한다.
리포트가 주주환원을 두고 주가가 한층 높은 수준에서 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쓴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삼성전자 주식 투자 리스크는
삼성전자 주식 투자 리스크는? 다만 루친스의 실험에서 놓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옛 공식은 틀린 공식이 아니었다. 앞선 문제들에서는 분명히 정답을 냈다.
메모리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사이클은 결국 돌아왔다.
121%라는 가격 전망은 조사업체의 예측이고, 46만 원은 한 증권사의 의견이다.
공급 부족이 길어진다는 가정이 흔들리면 결론도 같이 흔들린다. 환율과 성과급 같은 변수, 스마트폰과 가전의 적자도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새 풀이법에 너무 빨리 익숙해지는 것 역시 또 하나의 갖춤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 리포트에서 가져가려는 건 목표주가가 아니라 질문 하나다.
지금 내가 이 주식을 싸다고, 혹은 비싸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번 문제를 읽고
지금 내가 이 주식을 싸다고, 혹은 비싸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이번 문제를 읽고 나온 것인가, 지난 문제에서 손에 익은 것인가.
휴대폰 버튼은 며칠 지나니 손이 새 자리를 찾아갔다. 누르기 전에 화면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투자에서도 그 정도의 수고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서학개미들 멘붕 올듯" 골드만삭스가 힌트 준 뜻밖의 미국주식 5가지 처음 가 본 식당에서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결국 이렇게 묻게 된다.
"여기 뭐가 제일 인기 많나...
- 주말에 삼성전자 리포트 기사를 읽다가 그 엄지손가락이 떠올랐다.
- 그 뒤에 훨씬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를 섞었는데, 앞 문제에 익숙해진 사람들 대부분은 여전히 복잡한 공식을 썼다.
- 버튼 자리가 바뀐 줄 알면서도 예전 자리를 누르던 그 엄지손가락과 다를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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